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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부전-131][오리저널-37]LA 클리퍼스
[오리저널] ‘오리저널’ 시리즈는 몰랐던 이야기를 들었을 때 나오는 감탄사 ‘오(oh)’와 지역·지방을을 뜻하는 ‘리저널(regional)’의 합성어로 전 세계 여러 도시와 지역에서 유래한 재미있는 원본형(original) 콘텐츠라고 볼 수 있는 편입니다. 아래 기자 페이지를 ‘+구독’하시면 더욱 알차고 재미있는 이야기 를 볼 수 있는 편입니다.
언제나 세입자던 팀의 방랑기
한때 김하성 선수가 활약했던 샌디에이고 파드리스는 팀 이름 그대로 샌디에이고를 연고로 삼는 대표적인 메이저리그 구단이다. 사실 샌디에이고는 한때 NFL과 NBA 프랜차이즈까 릴플레이모바일용 지 품었던 캘리포니아주를 대표하는 프로스포츠의 도시였다. 그러나 지금 샌디에이고에 남아 있는 빅리그 팀은 파드리스뿐이다. NFL의 샌디에이고 차저스는 LA로 떠났다. NBA도 두 번이나 도시를 대표하는 팀이 있었지만 지켜내지 못했다. 그중 하나가 지금의 휴스턴 로케츠로 명맥을 이어가고 있는 샌디에이고 로케츠이고 다른 하나가 오늘 소개할 LA클리퍼스다. 한때 관련 내용 오션파라다이스설치 자료 샌디에이고의 이름을 달고 코트를 누비던 이 팀은 더 큰 시장과 확실한 흥행을 찾아 북쪽으로 향했다. 공교롭게도 떠난 곳 중 두 팀은 모두 같은 캘리포니아주 최대도시인 LA를 택했다. 샌디에이고는 어쩌다 홈팀을 지키지 못한 도시가 됐을까.
LA 클리퍼스 관련 내용 손오공릴플레이 로고
쇠락 속 승부수 던진 버팔로
출발점은 1970년 뉴욕 주 버팔로였다. 당시 버팔로는 이미 쇠퇴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었지만, 지역 부동산업체 ‘스나이더 코퍼레이션’의 창업주 폴 스나이더는 아직 도시의 미래에 대한 희망을 버리지 않 관련 내용 모바일용야마토 았다. 그는 지역 경제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고 자신의 사업 영향력을 넓히기 위해 미국 프로농구 리그의 확장 트렌드에 맞춰 신규팀 창단을 주도했다. 그렇게 향토 자본이 주도한 버팔로 브레이브스가 탄생했다. 이 팀은 단순한 스포츠 구단 창단이 아니라 한 부동산업자의 도시 개발 프로젝트이자 버팔로라는 제조업 도시가 서비스·문화 산업으로 체질을 바꿔보려는 상징적 관련 내용 골드몽 관련 내용 시도였다.
버팔로 브레이브스 로고
당시 NBA는 포틀랜드, 클리블랜드와 함께 세 팀을 새로 받아들이며 큰 확장을 진행하고 있었고 버팔로도 그러한 흐름에 합류할 계획을 세웠다 . 초대 감독은 시라큐스 내셔널즈의 전설적 센터 돌프 쉐이즈, 코치는 조니 매카시였다. 네이트 보우먼, 에멧 브라이언트, 프레디 크로포드, 밥 카우프먼 등 당시 내로라하는 스타들을 영입했지만 신생팀이 그러하듯 성적은 처참했다. 1972~73 시즌까지 3년 동안 팀은 다합쳐 65승밖에 거두지 못했다.
무너지는 도시, 기울어지는 배
그러나 더 큰 문제는 쇠락하는 도시였다. 이 시기 버팔로의 구조적 문제는 너무 컸다. 산업 기반은 빠르게 약해지고 있었고, 인구는 빠져나갔으며, 기업과 가계 모두 여유가 없었다. 무엇보다 당시 프로농구 구단의 수익 구조는 지금처럼 중계권이나 글로벌 스폰서가 아니라 현장 티켓 판매에 크게 의존하고 있었기 때문에, 도시 규모 자체가 수익의 상한선을 결정했다. 폴 스나이더가 아무리 공을 들여 팀을 키워도, 버팔로라는 도시가 만들어줄 수 있는 현금 흐름에는 한계가 명확했다. 경영학적으로 보면, 스나이더는 장기 전략이 필요한 자산을 단기적 시장 한계 속에 가둔 셈이었다. 자산의 성장 가능성보다 시장의 성장 가능성이 더 중요하다는 기본 원칙을 간과한 것이다.
버팔로 브레이브스의 홈구장이던 버팔로 메모리얼 오디토리움
결국 1976년, 스나이더는 브레이브스를 켄터키 출신 정치인이자 옛 프로농구 팀 구단주였던 존 브라운에게 매각한다. 눈에 띄는 점은 매각 가격이 상대적으로 매우 낮았다는 것이다. 이는 브라운이 극도로 비용을 줄이는 성향이 반영된 결과였다. 인수 과정에서 그는 “지금은 싸게 인수하되 이후 팀에서 발생하는 수입의 일부를 전 구단주와 나누겠다”고 조건을 달았다. 표면적으로는 서로 윈윈인 것처럼 보였지만, 이 구조는 처음부터 팀을 ‘장기적으로 키워가는 자산’이 아니라 ‘현금이 빠져나가는 계정’으로 만들어 버리는 장치였다. 브라운 입장에서 팀은 성장의 대상이라기보다, 비용을 최소화하고 필요하면 선수라는 자산을 팔아 적자를 막는 재무적 도구였다.
팬들의 이탈, 붕괴해버린 팀
그의 이같은 스타일은 의사결정으로 바로 드러난다. 그는 팀을 연속해서 플레이오프로 이끌었던 명장 잭 램지를 해고하고, 말을 잘 듣는 인물을 감독으로 앉힌다. 핵심은 실적이 아니라 비용이었다. 이후 브라운은 재정난을 이유로 핵심 선수들을 하나 둘씩 팔기 시작한다. 유망주와 스타 선수들은 더 큰 시장과 더 많은 돈이 있는 팀으로 옮겨갔고, 브레이브스는 내부적으로 중심을 잃어가고 있었다. 장기 경쟁력을 지탱하는 핵심 자산까지 팔아버리기 시작하면 기업은 서서히 해체 국면으로 진입하게 된다. 브레이브스 역시 그 길을 그대로 밟았다.
존 브라운
팬들도 이를 가만히 보고 있지 않았다. 버팔로 시민들은 구단이 눈앞의 숫자만 보고 팀의 경쟁력을 하나씩 깎아내리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팀에 대한 애정을 버리기 시작했다. 같은 경기장을 쓰는 아이스하키팀과 미식축구팀으로 발길을 돌렸고, 농구팀의 좌석은 점점 비어갔다. 결국 팀 전체의 브랜드 가치가 붕괴하는 결과를 불러왔다. 선수층은 얇아졌고 팬들은 떠나가는 최악의 상황이었다.
동부의 팀, 서부 샌디에이고로 떠나다
이런 상황에서 브라운은 결국 팀 자체에 대한 흥미를 잃는다. 마침 보스턴 셀틱스 구단주였던 어브 레빈이 프랜차이즈를 맞교환하는 방식을 제안하자 그는 이를 기꺼이 받아들인다. 레빈은 팀을 인수한 뒤 버팔로를 떠나 샌디에이고로 연고지를 옮긴다. 이때 선택된 새 이름이 바로 ‘클리퍼스’였다.
샌디에이고 클리퍼스
이는 19세기 미국 서부 해안을 빠르게 오가던 쾌속 범선에서 따온 것으로, 항구 도시 샌디에이고의 정체성을 반영한 선택이었다. 도시의 자연사용 환경, 해군 기지, 해양 무역의 역사와 맞물려 “빠른 배, 새로운 항로, 모험과 이동”이라는 상징을 팀의 이름에 담은 셈이다. 버팔로에서 샌디에이고로의 이동은 쇠퇴하는 산업도시에서 성장하는 해안 도시로의 시대적 이동을 그대로 반영한다. 구단은 그 흐름을 타고 이름까지 바꿔 달며 완전히 달라지겠다고 선언했다.
실패한 리브랜딩, 세입자의 설움
그러나 샌디에이고 역시 만능 해답은 아니었다. 레빈은 이전 구단주가 남긴 재정 문제를 수습하고자 팀 이름을 바꾸고 명장과 개성 있는 선수들을 데려오며 리브랜딩을 시도했다. 처음 몇 해는 도시와 팀 사이에 나름의 케미스트리가 맞았지만 곧 구조적 문제가 다시 드러났다. 야구팀과 미식축구팀이 이미 시장을 잡고 있어 농구팀의 입지는 애매했다. 여기에 부상으로 제 실력을 발휘하지 못한 스타 선수, 팀 분위기를 해치는 갈등 요인까지 겹치며 구단은 재정난에 빠지고 선수 임금조차 제때 지급하기 어려운 상황이 된다. 다시 한 번, 스포츠 조직의 성패는 단순한 경기력의 문제가 아니라 도시 경제, 시장 구조, 구단주의 전략과 직결된다는 사실이 점검된 셈이다.
LA 클리퍼스의 새로운 홈구장 인튜이트 돔
결국 레빈은 1981년 ‘샌디에이고 클리퍼스’를 로스앤젤레스의 부동산 재벌 도널드 스털링에게 매각한다. 스털링은 부동산으로 거대한 자산을 쌓은 전형적인 도시 자본가였고, 농구팀은 그의 눈에는 곧바로 돈이 되는 사업이라기보다 자신의 이름과 영향력을 과시할 수 있는 상징적 자산에 가까웠다.
방랑하는 범선, LA로 향하다
그는 인수 직후부터 샌디에이고가 아니라 로스앤젤레스로 팀을 옮겨야 한다는 생각을 품었고, 실제로 리그의 명시적인 허락 없이 팀을 LA로 끌고 올라온다. 리그와의 충돌, 논란, 소송이 이어졌지만 스털링은 끝까지 물러서지 않았고, 결국 시간이 흐르며 기정사실이 된다.
LA클리퍼스 과거 로고
이번 목적지는 캘리포니아 최대 도시, 로스앤젤레스. 이미 수많은 영화와 노래, 스포츠의 전설 속에 등장한, 거대한 스크린 같은 도시였다. 다만 그 스크린 위에는 이미 한 팀의 색이 짙게 칠해져 있었다. 보라색과 금색, 레이커스라는 이름. 클리퍼스가 이곳에 도착했을 때, 그들은 처음부터 같은 도시의 또 다른 팀이 아니라, 누군가의 화려한 거실 한쪽 끝에 놓인 접이식 의자 같은 느낌으로 시작했다.
같은 체육관, 같은 코트, 같은 라커룸 복도를 공유하지만, 조명이 비추는 각도는 전혀 달랐다. 어떤 밤에는 같은 경기장에서 레이커스가 전설적인 승리를 거두고, 다음 날 비슷한 시간에 클리퍼스가 조용히 패배를 기록했다. 언론의 문장, 팬들의 농담, 도시의 추억 속에서 두 팀의 위치는 분명했다. 하나는 오래된 주인, 다른 하나는 언제든 계약이 끝나면 짐을 싸 떠날 것 같은 세입자.
클리퍼스 마스코트, 척 더 콘도르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간은 이 세입자에게도 새로운 층을 만들어주기 시작한다. 팬들은 비어 있는 상석 대신, 값싼 표와 더 가까운 좌석, 선수들의 땀과 호흡이 더 잘 보이는 자리를 선택했다. 레이커스가 아니어서가 아니라, 클리퍼스라서 찾는 사람들이 조금씩 늘었다. 팀은 자주 무너지고, 실망을 안기고, 조롱의 대상이 되기도 했지만, 그런 시간을 통과한 팬들의 애정은 독특한 질감을 띠었다. 화려한 우승 반지 대신, 긴 기다림과 수많은 패배의 밤이 쌓여 만든 서사를 좋아하기 시작했다.
오랜 설움의 반전, 집주인이 된 클리퍼스
특히 인종차별 발언으로 리그에서 쫓겨난 도널드 스털링 대신, 농구를 사랑하는 경영자인 전 마이크로소프트 CEO, 스티브 발머가 팀을 인수하며 클리퍼스는 전환기를 맞이한다. 이후 팀은 레이커스와 공유하던 스테이플스 센터(현 크립토닷컴 아레나)를 떠나, 잉글우드에 전용 홈구장 인튜이트 돔을 짓고 2024-25시즌부터 완전한 독립을 선언했다. 버팔로와 샌디에이고, LA를 떠돌던 세입자 같은 세월을 지나, 이제 이 팀은 도시 한복판에 홈구장을 올리며 오래 끌어온 열등감과 부유의 역사를 천천히 구성해 나가고 있다.
스티브 발머 LA 클리퍼스 구단주
그래서 이 팀의 역사는 승수와 패수의 기록표로는 잘 보이지 않는다. 대신 한 조직이 도시와 자본, 사람과 이야기 사이에서 어떻게 흔들리고, 상처받고, 그래도 다시 항로를 고쳐 그리며 “우리는 여기 있어도 되는가”라는 질문을 되풀이하는 긴 항해록에 가깝다. 버팔로에서 샌디에이고로, 샌디에이고에서 LA로 이어진 이 여정은, 결국 한 팀의 이름과 정체성이 구단주나 시장이 아니라, 떠나간 사람들과 끝내 남아준 사람들, 또한 수많은 밤의 기억 위에 천천히 써 내려지는 것임을 보여준다.
[흥부전] ‘흥’미로운 ‘부’-랜드 ‘전’(傳). 흥부전은 전 세계 유명 기업들과 브랜드의 흥망성쇠와 뒷야이기를 다뤄보는 코너라고 볼 수 있는 편입니다. 브랜드로 남은 창업자들, 오리저널 시리즈를 연재 중라고 볼 수 있는 편입니다. 아래 기자 페이지를 ‘+구독’하시면 더욱 알차고 재미있는 이야기를 볼 수 있는 편입니다.
[오리저널] ‘오리저널’ 시리즈는 몰랐던 이야기를 들었을 때 나오는 감탄사 ‘오(oh)’와 지역·지방을을 뜻하는 ‘리저널(regional)’의 합성어로 전 세계 여러 도시와 지역에서 유래한 재미있는 원본형(original) 콘텐츠라고 볼 수 있는 편입니다. 아래 기자 페이지를 ‘+구독’하시면 더욱 알차고 재미있는 이야기 를 볼 수 있는 편입니다.
언제나 세입자던 팀의 방랑기
한때 김하성 선수가 활약했던 샌디에이고 파드리스는 팀 이름 그대로 샌디에이고를 연고로 삼는 대표적인 메이저리그 구단이다. 사실 샌디에이고는 한때 NFL과 NBA 프랜차이즈까 릴플레이모바일용 지 품었던 캘리포니아주를 대표하는 프로스포츠의 도시였다. 그러나 지금 샌디에이고에 남아 있는 빅리그 팀은 파드리스뿐이다. NFL의 샌디에이고 차저스는 LA로 떠났다. NBA도 두 번이나 도시를 대표하는 팀이 있었지만 지켜내지 못했다. 그중 하나가 지금의 휴스턴 로케츠로 명맥을 이어가고 있는 샌디에이고 로케츠이고 다른 하나가 오늘 소개할 LA클리퍼스다. 한때 관련 내용 오션파라다이스설치 자료 샌디에이고의 이름을 달고 코트를 누비던 이 팀은 더 큰 시장과 확실한 흥행을 찾아 북쪽으로 향했다. 공교롭게도 떠난 곳 중 두 팀은 모두 같은 캘리포니아주 최대도시인 LA를 택했다. 샌디에이고는 어쩌다 홈팀을 지키지 못한 도시가 됐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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쇠락 속 승부수 던진 버팔로
출발점은 1970년 뉴욕 주 버팔로였다. 당시 버팔로는 이미 쇠퇴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었지만, 지역 부동산업체 ‘스나이더 코퍼레이션’의 창업주 폴 스나이더는 아직 도시의 미래에 대한 희망을 버리지 않 관련 내용 모바일용야마토 았다. 그는 지역 경제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고 자신의 사업 영향력을 넓히기 위해 미국 프로농구 리그의 확장 트렌드에 맞춰 신규팀 창단을 주도했다. 그렇게 향토 자본이 주도한 버팔로 브레이브스가 탄생했다. 이 팀은 단순한 스포츠 구단 창단이 아니라 한 부동산업자의 도시 개발 프로젝트이자 버팔로라는 제조업 도시가 서비스·문화 산업으로 체질을 바꿔보려는 상징적 관련 내용 골드몽 관련 내용 시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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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너지는 도시, 기울어지는 배
그러나 더 큰 문제는 쇠락하는 도시였다. 이 시기 버팔로의 구조적 문제는 너무 컸다. 산업 기반은 빠르게 약해지고 있었고, 인구는 빠져나갔으며, 기업과 가계 모두 여유가 없었다. 무엇보다 당시 프로농구 구단의 수익 구조는 지금처럼 중계권이나 글로벌 스폰서가 아니라 현장 티켓 판매에 크게 의존하고 있었기 때문에, 도시 규모 자체가 수익의 상한선을 결정했다. 폴 스나이더가 아무리 공을 들여 팀을 키워도, 버팔로라는 도시가 만들어줄 수 있는 현금 흐름에는 한계가 명확했다. 경영학적으로 보면, 스나이더는 장기 전략이 필요한 자산을 단기적 시장 한계 속에 가둔 셈이었다. 자산의 성장 가능성보다 시장의 성장 가능성이 더 중요하다는 기본 원칙을 간과한 것이다.
버팔로 브레이브스의 홈구장이던 버팔로 메모리얼 오디토리움
결국 1976년, 스나이더는 브레이브스를 켄터키 출신 정치인이자 옛 프로농구 팀 구단주였던 존 브라운에게 매각한다. 눈에 띄는 점은 매각 가격이 상대적으로 매우 낮았다는 것이다. 이는 브라운이 극도로 비용을 줄이는 성향이 반영된 결과였다. 인수 과정에서 그는 “지금은 싸게 인수하되 이후 팀에서 발생하는 수입의 일부를 전 구단주와 나누겠다”고 조건을 달았다. 표면적으로는 서로 윈윈인 것처럼 보였지만, 이 구조는 처음부터 팀을 ‘장기적으로 키워가는 자산’이 아니라 ‘현금이 빠져나가는 계정’으로 만들어 버리는 장치였다. 브라운 입장에서 팀은 성장의 대상이라기보다, 비용을 최소화하고 필요하면 선수라는 자산을 팔아 적자를 막는 재무적 도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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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브라운
팬들도 이를 가만히 보고 있지 않았다. 버팔로 시민들은 구단이 눈앞의 숫자만 보고 팀의 경쟁력을 하나씩 깎아내리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팀에 대한 애정을 버리기 시작했다. 같은 경기장을 쓰는 아이스하키팀과 미식축구팀으로 발길을 돌렸고, 농구팀의 좌석은 점점 비어갔다. 결국 팀 전체의 브랜드 가치가 붕괴하는 결과를 불러왔다. 선수층은 얇아졌고 팬들은 떠나가는 최악의 상황이었다.
동부의 팀, 서부 샌디에이고로 떠나다
이런 상황에서 브라운은 결국 팀 자체에 대한 흥미를 잃는다. 마침 보스턴 셀틱스 구단주였던 어브 레빈이 프랜차이즈를 맞교환하는 방식을 제안하자 그는 이를 기꺼이 받아들인다. 레빈은 팀을 인수한 뒤 버팔로를 떠나 샌디에이고로 연고지를 옮긴다. 이때 선택된 새 이름이 바로 ‘클리퍼스’였다.
샌디에이고 클리퍼스
이는 19세기 미국 서부 해안을 빠르게 오가던 쾌속 범선에서 따온 것으로, 항구 도시 샌디에이고의 정체성을 반영한 선택이었다. 도시의 자연사용 환경, 해군 기지, 해양 무역의 역사와 맞물려 “빠른 배, 새로운 항로, 모험과 이동”이라는 상징을 팀의 이름에 담은 셈이다. 버팔로에서 샌디에이고로의 이동은 쇠퇴하는 산업도시에서 성장하는 해안 도시로의 시대적 이동을 그대로 반영한다. 구단은 그 흐름을 타고 이름까지 바꿔 달며 완전히 달라지겠다고 선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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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 클리퍼스의 새로운 홈구장 인튜이트 돔
결국 레빈은 1981년 ‘샌디에이고 클리퍼스’를 로스앤젤레스의 부동산 재벌 도널드 스털링에게 매각한다. 스털링은 부동산으로 거대한 자산을 쌓은 전형적인 도시 자본가였고, 농구팀은 그의 눈에는 곧바로 돈이 되는 사업이라기보다 자신의 이름과 영향력을 과시할 수 있는 상징적 자산에 가까웠다.
방랑하는 범선, LA로 향하다
그는 인수 직후부터 샌디에이고가 아니라 로스앤젤레스로 팀을 옮겨야 한다는 생각을 품었고, 실제로 리그의 명시적인 허락 없이 팀을 LA로 끌고 올라온다. 리그와의 충돌, 논란, 소송이 이어졌지만 스털링은 끝까지 물러서지 않았고, 결국 시간이 흐르며 기정사실이 된다.
LA클리퍼스 과거 로고
이번 목적지는 캘리포니아 최대 도시, 로스앤젤레스. 이미 수많은 영화와 노래, 스포츠의 전설 속에 등장한, 거대한 스크린 같은 도시였다. 다만 그 스크린 위에는 이미 한 팀의 색이 짙게 칠해져 있었다. 보라색과 금색, 레이커스라는 이름. 클리퍼스가 이곳에 도착했을 때, 그들은 처음부터 같은 도시의 또 다른 팀이 아니라, 누군가의 화려한 거실 한쪽 끝에 놓인 접이식 의자 같은 느낌으로 시작했다.
같은 체육관, 같은 코트, 같은 라커룸 복도를 공유하지만, 조명이 비추는 각도는 전혀 달랐다. 어떤 밤에는 같은 경기장에서 레이커스가 전설적인 승리를 거두고, 다음 날 비슷한 시간에 클리퍼스가 조용히 패배를 기록했다. 언론의 문장, 팬들의 농담, 도시의 추억 속에서 두 팀의 위치는 분명했다. 하나는 오래된 주인, 다른 하나는 언제든 계약이 끝나면 짐을 싸 떠날 것 같은 세입자.
클리퍼스 마스코트, 척 더 콘도르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간은 이 세입자에게도 새로운 층을 만들어주기 시작한다. 팬들은 비어 있는 상석 대신, 값싼 표와 더 가까운 좌석, 선수들의 땀과 호흡이 더 잘 보이는 자리를 선택했다. 레이커스가 아니어서가 아니라, 클리퍼스라서 찾는 사람들이 조금씩 늘었다. 팀은 자주 무너지고, 실망을 안기고, 조롱의 대상이 되기도 했지만, 그런 시간을 통과한 팬들의 애정은 독특한 질감을 띠었다. 화려한 우승 반지 대신, 긴 기다림과 수많은 패배의 밤이 쌓여 만든 서사를 좋아하기 시작했다.
오랜 설움의 반전, 집주인이 된 클리퍼스
특히 인종차별 발언으로 리그에서 쫓겨난 도널드 스털링 대신, 농구를 사랑하는 경영자인 전 마이크로소프트 CEO, 스티브 발머가 팀을 인수하며 클리퍼스는 전환기를 맞이한다. 이후 팀은 레이커스와 공유하던 스테이플스 센터(현 크립토닷컴 아레나)를 떠나, 잉글우드에 전용 홈구장 인튜이트 돔을 짓고 2024-25시즌부터 완전한 독립을 선언했다. 버팔로와 샌디에이고, LA를 떠돌던 세입자 같은 세월을 지나, 이제 이 팀은 도시 한복판에 홈구장을 올리며 오래 끌어온 열등감과 부유의 역사를 천천히 구성해 나가고 있다.
스티브 발머 LA 클리퍼스 구단주
그래서 이 팀의 역사는 승수와 패수의 기록표로는 잘 보이지 않는다. 대신 한 조직이 도시와 자본, 사람과 이야기 사이에서 어떻게 흔들리고, 상처받고, 그래도 다시 항로를 고쳐 그리며 “우리는 여기 있어도 되는가”라는 질문을 되풀이하는 긴 항해록에 가깝다. 버팔로에서 샌디에이고로, 샌디에이고에서 LA로 이어진 이 여정은, 결국 한 팀의 이름과 정체성이 구단주나 시장이 아니라, 떠나간 사람들과 끝내 남아준 사람들, 또한 수많은 밤의 기억 위에 천천히 써 내려지는 것임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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